건강과 문화/시사((時事)

"대마도 반환촉구 결의안" '국회의원31명 제출'

건강과 문화 2012. 8. 18. 18:58

'대마도 우리땅'

 

일본이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할 움직임을 보이면서 독도를 둘러싼 한일 네티즌 사이의 설전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듯 네티즌 사이에서 대마도 문제 또한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 되고있다.

 

과거 대통령과 국회의원 처럼 지금 그때의 정신이 필요 할 때인 것 같다. 

"대마도 반환촉구 결의안" '국회의원31명 제출'

1949년 1월7일, 이승만 대통령이 내외신 기자들과 가진 회견에서 ‘대마도는 우리 땅’이라고 전격 선언후 10여일후

 

[대마도가 경상도땅으로 표기되어 있는 조선 말기의 고지도 `소라동천`의 한 부분. 지도 오른쪽 밑에 대마도라고 표시되어 있다. ]

 

1949년 1월7일, 이승만 대통령이 내외신 기자들과 가진 회견에서 ‘대마도는 우리 땅’이라고 전격 선언했다. 2차대전 패전으로 구(舊)소련에 북방도서 4도를 빼앗겨 의기소침해 있던 일본인들에겐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다.


이대통령은 “배상요구는 어느 시기까지로 한정할 것인가”라는 한 기자의 질문에 답하던 중 이같이 폭탄선언을 했다.

 

이대통령은 “대마도는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에게 조공을 바쳐온 속지나 마찬가지였는데 350년 전 임진왜란을 일으킨 일본이 대마도를 무력강점한 뒤 일본 영토가 됐고, 이때 결사항전한 의병들의 전적비가 도처에 있다”며 배경을 설명했다.


10여일 뒤 31명의 우리 의원이 ‘대마도 반환촉구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해 일본을 더욱 압박했다.

 

대마도 요구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한 맞대응, 장차 있을 한일회담에서 유리한 협상 고지를 점령하려는 엄포용 성격이 강했지만 회견소식을 접한 일본의 요시다(吉田) 총리는 혼비백산 맥아더 사령관에게 달려가 하소연했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세계적인 육종학자 우장춘 박사가 해방이 돼 1945년 9월 귀국을 서두르자 ‘대마도는 내 줄 수 있어도 우장춘은 내줄수 없다’며 귀국을 만류했다는 일본 정부였다.

 

경향신문/1948년.9.10 뉴스기사 

 

 

 


 

 

 


 

 ''''거북이-아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