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과 문화/사랑학 개론

나보고 먼저 자라더니, 당신 밤새 뭘 본 거야?

건강과 문화 2012. 9. 15. 10:14

  가족 ‘야동남편’과의 전쟁
▶ ‘야동 순재’ ‘야동 지원’ 같은 캐릭터가 드라마에 등장하더니, 일부 연예인 부부는 예능 프로에 나와 “우리 남편은 야동 마니아”라고 거침없이 ‘폭로’하기도 합니다. “야동 안 보는 남자 없다”는 대한민국의 요즘 풍경입니다. 최근 성폭행 범죄가 잇따르면서 정부가 야동 단속에 고삐를 죄고 있답니다. “모든 남성이 잠재적 범죄자냐”며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닌 듯합니다.

 

 

 

“우리 사이에 무슨 문제가 생긴 걸까?”

 

결혼 10년차, ‘딩크족’(자녀 없는 맞벌이 부부)으로 살고 있는 김정은(가명·36)씨에겐 요새 남들에겐 말 못할 고민이 하나 생겼다. 집에서 사용하는 컴퓨터에서 제목을 언급하기도 민망한 낯뜨거운 ‘야동’(야한 동영상) 파일을 무더기로 발견했기 때문이다. 회사 일이 많다며 일감을 싸들고 들어와 밤늦게까지 서재에서 일을 하던 남편이 떠올랐다.

 

 

어쭈, 헛웃음이 나왔다. 그저 쿨하게 넘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떻게 야동 같은 걸 볼 수 있냐”며 호들갑을 떨 순진한 나이도 아니잖나.

 

결혼 전에도 남편은 “야동에서 봤다”며 킥킥 웃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들려주곤 했다. 하지만 생각할수록 약이 올랐다. ‘나더러 먼저 자라더니 다른 여자들이 벌거벗고 나오는 동영상을 보고 있었던 거야?’ 약오르는 이 감정은 ‘배신감’에 가까웠다.

 

‘총각 때야 그렇다 쳐도 결혼해서도 야동을 보는 건 좀 이상한 거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한번 하자”고 할 때 싫다고 진저리를 친 것 같지도 않은데, 남편이 다른 자극을 찾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자존심도 상했다.

 

‘나와의 잠자리가 지루해진 걸까’ 불현듯 걱정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남편하고 함께 잠자리를 한 지도 꽤 됐다. “바쁘고 피곤하다는 서로의 이해에 맞았을 뿐”이라고 여겨왔는데, 그사이 남편은 컴퓨터 앞에 앉아 딴짓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어이없게도 눈물이 왈칵 터졌다.

 

‘내가 그렇게 매력이 없어졌나?’ 고민도 됐다. 그러고 보니 거울 속에 비친 허리는 통나무처럼 굵고, 눈가엔 주름이 자글자글한 것만 같다. 배신감과 모멸감, 우려가 뒤엉킨 머릿속에서 남편이 다른 여자와 뜨거운 정사를 벌이는 모습이 마구 그려진다.

 

 

휴지통엔 이상한 흔적까지
남편 컴퓨터 부숴버리고픈데
“남들 다 보는데 뭐가 대수야?”
당황도 않고 당당하게 나온다

 

야한 동영상으로 욕구 풀면서
아내 몸엔 손도 대지 않다니
내가 매력이 없어졌나 해서
어이없는 눈물이 왈칵 터졌다

 

그냥 모른 척 넘어가주려던 김씨는 끝내 남편에게 따지듯 물었다. “당신, 왜 야동 따위를 보는 거야?” 급작스러운 질문에 얼굴이 벌게진 남편이 말했다.

 

 “아, 그거. 당신 봤구나. 그냥 보는 거야. 일종의 취미생활이랄까. 당신 친구들한테도 물어봐. 세상에 야동 안 보는 남자는 없어.” 그저 ‘취미’라는데 무슨 얘길 더 할 수 있겠나. “하여튼 남자들이란….” 김씨는 혀를 끌끌 차고 넘어가줬다. 그렇다고 찜찜한 기분이 다 사라진 건 아니었다.

 

 

결혼 3년차, 이현진(가명·32)씨는 솔직히 “남편의 컴퓨터를 부숴버리고 싶은 기분”이다. 이씨의 남편은 한마디로 ‘야동 마니아’다. 모르는 척 넘어가려고 하지만,

 

 서재 쓰레기통에서 미처 치우지 못한 남편의 ‘흔적’을 발견할 때마다 이씨의 혈압은 급상승한다. 처음 당황스러워하던 남편은 이젠 아주 당당하다. “밖에 나가서 바람을 피우는 것도 아니고, 남들 다 보는 야동을 보는 게 뭐가 대수냐”는 것이다.

 

 

“뭐가 대수냐고?” 남편이 애써 언급을 피하는 한 가지가 있다. 남편은 야동을 보면서 욕구를 풀면서도 이씨의 몸엔 거의 손도 대지 않는다는 점이다. 남편은 늘 “피곤하다”며 “다음에 하자”고 미루기만 한다. 그다음이 언제가 될지는 기약이 없다. “그렇다고 그다음이 언제냐고 따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연애 시절, 틈만 나면 모텔 한번 가자고 조르기 바빴던 남편의 이런 변화가 이씨는 당혹스럽고 밉다.

 

 

남편이 야동에 빠지기 시작한 건 결혼 1년 남짓, 이씨가 임신을 했다가 유산했을 즈음이다. 이씨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됐다. ‘아이를 잃은 슬픔에 몸 가누기도 힘든 아내를 두고 도대체 야동 따위를 보는 게 말이나 되냐’는 것이다.

 

남편이 짐승처럼 느껴지고, 징그럽기도 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나는 남편과 잘 지내기 위해 노력했다”고 이씨는 생각한다. 한번은 여성지에서 충고하는 대로 섹시한 란제리를 입고 남편을 ‘유혹’하려고 했다. 민망하게 거절만 당했다. 남편의 눈에서 비친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 이씨는 “괜스레 밝히는 여자 취급만 받은 것 같아 마음에 상처만 입었다.” 그 이후로 이씨는 남편에게 섹스의 ‘ㅅ’자도 꺼내지 않는다.

 

 

“아내 눈엔 모든 게 내 탓이다.” 남편도 남편대로 할 말은 있다. 아내는 남편이 자기를 밀어낸다고만 생각했지, 자신이 남편을 밀어냈다는 건 인정하지 않는다. 아이를 유산한 이후, 아내는 그의 손길을 매몰차게 내쳤다.

 

“나는 이렇게 힘든데 당신은 어떻게 그런 생각이나 하느냐”는데 할 말이 없어졌다. 그의 딴엔 제법 시간이 흘렀다고, 조심스럽게 꺼낸 얘기였는데 그 점은 무시됐다.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거냐고 물을 순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러다 보니 야동을 보면서 자연스레 욕구를 해결했다. 딱히 야동이 좋아서 보는 건 아니지만 그게 편하다. 언제부터인가는 아내와 살이 맞닿는 것도 영 어색했다. 몸도, 마음도 멀어진 기분. 그건 둘 다 마찬가지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추가열 (Don`t Go Away - Violin)'